• HOME
  • 마이인빌
  • 메일
  • 고객센터
  • 사이트맵
  • 마을소개 알림터 마을관광 마을장터 마을체험 마을사랑방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광양
    백학동마을

    산수진행도
    백운산의 백학동은 오래 전부터 지리산의 청학동과 쌍벽을 이루는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도선국사가 백운산 억불봉 아래에 위치하는 이곳을 가리켜 학이 하강하는 물형과 황룡이 배를 지고 있는 물형으로 풍수해가 없는 선계(이상형)의 땅이라 감탄하여 백학동이라 명명하였다.

    죽림마을

    죽림마을은 재령이씨 이상의가 옥룡에 거주하다가 1580년쯤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죽림마을은 죽천이라고도 부르며, 이름은 왜정시대인 1914년 이후의 마을 이름이고 그 이전에는 대합수라 칭했다. 언제부터 대합수라 불렀는지 알 수 없으나 웅동, 성두, 어치의 3물기가 합수되는 곳으로 ‘대합수’를 ‘대숲’으로 음차하여 일제 치하에서 한문으로 음역하면 죽림으로 변형시킨 것이라 추측된다. 이 마을은 웅동, 신황, 구황, 어치, 지계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 죽림마을과 신전마을을 합해서 ‘죽전마을’이라 칭한다

    신전마을

    신전마을은 창원황씨가 맨 먼저 정착하였다고 전하나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금의 신전마을이 1909년 이전에는 신짐이라 불러오다 한일합방 이후 이곳에 새로 개간된 밭이 있었다 하여 신전이라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때에 이 마을 인근인 덧골에 신전마을보다 앞서 몇 가구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지금도 집터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 죽림마을과 신전마을을 합해서 ‘죽전마을’이라 칭한다

    구황마을

    구황마을은 1480년경 남평문씨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전하는데 현재도 남평문씨가 살고 있다. 옛날 이곳에 황룡사란 절이 있었다. 황룡사에는 누런 용이 살았다고 전해져 마을의 이름도 ‘누런이’, ‘황리’, 또는 ‘노룡이’로 불리었다. 일설에 의하면 황룡부주(黃龍負舟)의 명지가 있다 하여 황룡리로 하였는데 뒤에 누런용리의 발음이 줄어져 ‘누런이’이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구황은 황리 남쪽에 새로운 마을이 생겨 신황이라 불리자 이에 대해 원래 있던 황리라는 뜻으로 구황으로 불러진 이름이다.

    웅동마을

    웅동마을은 1780년께 남원에 사는 곡부공씨가 화승총을 가지고 이곳 백운산 일대를 무대로 사냥하다가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에 이곳에 웅음소(熊陰所가)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바 마을역사가 오래된 곳이며, 사료에 의하면 1789년쯤 진상면 지역으로 이곳에 웅동촌이란 마을이 있었다. 현재 공씨는 살고 있지 않다. 지세가 험하고 곰이 많다하여 ‘곰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풍수지리학상 마을의 형국이 곰과 같다하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신황마을

    신라시대에 세워진 황룡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은 상당히 큰 규모로 암자를 어치리까지 두고 있었다. 조선조에 이르러 절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말았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을사람 서씨와 승려들 사이에 불화가 깊어서 서씨가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전한다. 그 절이 없어지자 절터를 개간하고 한두 가족씩 이주해 와서 새로운 촌락이 형성되어 신황마을이 되었고 원래 속해있던 황리는 구황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어치마을

    1789년쯤부터 어치촌이었으며 ‘느재’라는 고개가 있는 마을로 1600년경 재령이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이곳을 ‘느재’라 한 것은 마을 앞 고개의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늘인재’가 ‘느재’로 줄임말이 된 것이고, 후에 늘어(於)와 재치(峙)를 써서 어치라 한 것이다. 여기서 바라다 보이는 백운산의 종봉인 억불봉과 안방골 널렁바위 주위에 황룡사의 부속암자 12개가 있었다고 구전된다.

    지계마을

    1600년경 황룡사의 사동인 곡부공씨가 이절이 방화로 소실되자 갈곳이 없게되어 여기에 터전을 잡아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마을 이름 유래는 옛날 이 고을에 위치한 황룡사에 부속된 안방골의 암자에 살던 중들이 빨래할 깨끗한 물을 찾아다니다가 이곳 냇물이 가장 깨끗하다 하여 냇가 이름을 지계(智溪)라 한데서 유래한다. 흔히 지계비라 부르며 천살고지라는 곳에 용소라는 소가 있는데 용이 이곳에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 소는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기 때문에 한해가 심할 때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외회마을

    외회마을의 입촌 년대는 1830년쯤 금릉구씨 성을 가진 더벅머리 노총각이 인근마을에서 머슴살이 하다가 그 집 식모로 있던 처녀와 짝이되어 주인몰래 빠져나와 이곳 산중에 오두막을 짖고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하는데 문현기록상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1789년에 이미 이 고을에 회두촌(回頭村)이란 마을이 있었으므로 실제 마을 형성기는 이보다 앞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회두(回頭) 이름을 ‘왼데미’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이곳 근처에 자리한 황룡사 승려들이 다압면으로 가려면 지계마을을 거쳐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계곡물이 돌아서(回) 흐르는 입구(頭)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외회(外回) 는 바깥 왼데미 즉 외회두(外回頭)의 준말로 바깥쪽에 위치한 왼데미란 의미이다.

    내회마을

    내회마을은 1830년경 달성빈씨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의 원 이름은 외회마을과 같이 ‘왼데미’이며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안 왼데미(내회)라 부른다. 진상면에서는 제일 오지마을로 백운산 수어천의 근원지이며 용소와 오로대 등의 명승지가 있다.